기획-안동국시(4) '골목안 손국수’를 다시 가다
기획-안동국시(4) '골목안 손국수’를 다시 가다
  • 정주임
  • 승인 2023.11.22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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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안동살이 20년 만에 알게 된 안동의 맛

하늘이 파랗게 높고 구름은 하얀 가을이다.

은행잎에 노란 물이 들기 시작하면 긴 방망이 같은 것을 방안에 펼쳐 놓고 칼국수를 밀던 외할머니가 생각이 난다. 작은 유치원생 키만 한 방망이를 두 손에 잡고 하얀 밀가루를 휙휙 뿌려가면서 밀었던 반죽은 처음에는 얼굴만 했다가 솥뚜껑만 해졌다가 나중에는 방의 반을 덮을 정도로 커졌다. 방망이로 밀 때와 반죽을 넓게 펼 때의 소리도 다르다. 손으로 쓱쓱 반죽의 가장자리를 문지르다 보면 반죽은 자르기 좋고 먹기 좋은 얇은 상태가 되는데 자르기 전에는 또 반죽을 겹쳐 모양을 잡아준다. 겹치는 사이 사이 밀가루를 또 흩어 뿌려가며 반죽이 서로 붙지 않게 해야 얇으면서 결을 살려 자를 수 있고, 펼쳤을 때 가느다란 국수 면이 된다.

한 달에 한두 번, 엄마 없이 외가에 놀러 가게 되면 한 끼 정도는 먹었던 음식이 바로 칼국수였다. 숭덩 숭덩 썰어 넣은 감자와 호박은 마치 외가의 추억마냥 떠오르고 그 나이에 먹었던 국수와 김치의 맛이 입에 감도는 듯 군침이 난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칼국수의 방망이는 나의 엄마에게로 이어졌다. 외가의 한 평 반 남짓 되었던 작은방에서 밀던 국수는 엄마의 주방으로 이어졌고, 주방을 채울 정도의 넓은 동그라미는 줄줄이 국수 면이 되어 그릇에 담겼다. 조금 달라진 건 특별한 날은 아니지만 하늘이 흐린 날, 국물이 있으면 좋겠다 싶은 날 정도로 국수 메뉴가 올라오겠다 싶은 날이 예측되어졌다는 것. 그게 아니면 집에 일을 봐주러 오신 손님께 밥만 대접하려니 변변찮고 마땅한 국물은 없을 때 엄마는 국수를 밀었던 것 같다.

골목안 손국수 식당의 건진국수. 그동안 보아왔던 칼국수는 뜨끈한 국물에 감자와 호박이 달큰하게 익어 있었던 것인데, 건진국수는 차가운 칼국수였다.

이웃 지역에서 안동으로 온 지 20년째

같은 경상도 지역이라고는 하나 안동댐에서 고등어가 잡힌다는 류의 농담이라든지, 제사상에 문어가 올라가는 모습들이 생소하기 그지 없던 시기가 있었다.

안동이라는 곳에 와서 맞이한 사람들도 수도 없이 많았지만, 안동이라는 곳은 누가 왔을 때 먹을거리 걱정은 없는 곳이었다. 고기를 좋아하면 안동 갈비 골목으로, 조금 더 편한 사이라면 찜닭 골목으로, 생선을 좋아하면 간고등어 식당으로 안내했다. 때로 알고 오는 분들은 안동의 헛제사밥을 먹어야 한다며 댐으로 손수 나를 이끌기도 했다. 그런 중에도 안동의 국수는 관심 밖에 있었다.

안동의 국수를 만난 건 우연한 기회였다. 안동 토박이 선배를 따라나선 식당에서였다.

점심으로 거하게 먹기는 부담스럽고, 인원수가 많으니 금액대도 적당하고 무엇보다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많으니 안동의 전통 음식을 맛보이고 싶었던 선배의 마음이었을까.

10명에 가까운 인원수가 안동의 국수를 만난 곳은 골목안 손국수였다.

안동 시내라면 한두 번 가본 것도 아닌데 골목안 손국수집은 처음이었다. 홈플러스를 맞은편에 두고 옆 골목에 있는 이 식당은 빨간 간판에 주택을 개조한 듯이 집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안동의 건진국수를 처음 본 느낌은 조금 생경했다. 그동안 보아왔던 칼국수는 뜨끈한 국물에 감자와 호박이 달큰하게 익어 있었던 것인데, 건진국수는 차가운 칼국수였다. 그리고 더욱 생소했던 느낌의 이유는 노란 조가 섞여 있는 조밥에 상추가 먼저 나와서 국수가 나오기까지의 요기를 할 수 있었던 점이다. 분명 나는 간단하게 국수 한 그릇을 마음먹고 왔는데, 왜인지 모르게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랜만에 그때 갔던 골목안 손국수를 다시 방문했다. 여전히 주인분 내외는 정다우시고 친절하셨다. 메뉴판에는 칼국수와 여름 메뉴인 안동 건진국수가 적혀 있었다. 첫 신고식을 단체로 정신없이 했던 터라 이번에는 살뜰히 물어봐야겠다 다짐을 하고 앉으니 주인분께서 외려 먼저 상세히 말씀을 주셨다.

손국수는 우리가 흔히 아는 뜨거운 육수에 국수 면을 넣고 끓인 것으로 국물이 따뜻한 칼국수이고, 안동 건진국수는 국수의 면을 삶은 후 건져차가운 물에 한 번 헹군 후 육수를 부어 먹는 안동식 국수이다. 끓는 면을 건져 헹궜다고 해서 건진국수라고 한다니 참 직관적이고 재미있다. 그래서 손국수는 뜨거운 국수, 안동 건진국수는 차가운 육수를 부어 먹어 여름 메뉴에 있었던가 보다.

국시가 나오기 전 조밥을 상추에 쌈 싸서 먹는 걸 새롭게 접했다.

안동에서 만난 국수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먹어왔던 칼국수와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첫 번째는 면이다. 일반적으로 먹어왔던 국수의 면이 밀가루 면이었다면 안동 건진국수는 밀가루에 콩가루를 섞어 반죽을 한다. 콩가루를 넣은 이유인지 면이 조금 더 부드럽고 잘 끊기는 느낌이 있다. 대신에 고소함도 있다. 면의 고소함은 건진국수보다는 손국수에서 더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두 번째는 밥과 쌈, 그리고 멸치 반찬이다. 밥이 같이 나오는 것도 신선했는데 하물며 굉장히 정성스럽게 차린 느낌이 든다. 조밥과 직접 기른 것 같은 상추와 쌈장이 기본이고 그 외에서 두세 가지의 반찬이 더 나오는데 그 반찬에 제법 굵은 크기의 멸치 볶음이 늘 있다는 점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골목안 손국수에서도, 무주무 마을의 무주무 손국수에서도 다시 육수용 멸치 정도로 보이는 크기의 멸치가 매콤달큰하게 조려져 나왔다. 밥과 국수면, 그리고 멸치라는 작은 생선(?)조림으로 전체적인 영양소의 균형을 맞추는 것 같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세 번째는 국수 안에 들어있는 채소와 육수이다. 고향에서 먹었던 칼국수의 국물이 감자를 넣어 걸죽한 맛이었다면 안동의 건진국수는 훨씬 담백하고 시원하다. 그도 그럴 것이 배추와 애호박을 함께 끓여 담백하고 멸치 육수를 기본으로 해서 그렇다고 한다. 물론 오래전의 안동 건진국수는 조금 달랐다. 종가마다의 전통에 따라서 은어나 소의 양지머리, 닭이나 꿩고기 등으로 국물을 내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대부분이 멸치 육수를 사용한다고 한다. 아마도 낙동강을 인근에 둔 종가에서는 은어를 사용할 수 있었겠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양지머리나 닭 등으로 대신하지 않았을까.

골목안 손국수 식당의 칼국수
정주임 / 현재 미래문화재단 대표이사. 안동살이 20년째, 아직도 안동에 대해서 낯선 것이 많은 이웃 동네에서 시집온 정씨 성의 여자. 누구의 엄마, 어디의 대표이기보다는 멋진 인간이고 싶어 글을 쓰는 여자 사람이다.

20년 만에 그 맛 알게 된 안동국수

내가 살던 고향의 칼국수 정도이겠거니 하고 별 기대 없이 입문한 건진국수가 본래는 양반가의 귀한 손님에게 내놓는 음식이었다고 한다. 밥과 국수, 그리고 문어나 수육 등으로 영양을 맞추어 대접했던 봉제사 접빈객의 음식이었던 건진국수. 손님이 왔을 때 한 끼를 국수로 대접하는 것이 괜스레 소홀한 대접 같아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것이 이야기를 알고 나니 이제 마음이 놓인다.

가을이다. 낮에는 시원한 육수의 건진국수가, 저녁이면 뜨끈한 손국수가 어울리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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