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학교 가요제에서
15년 전 학교 가요제에서
  • 배오직
  • 승인 2009.07.02 10: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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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한컷> 학업에 시달린 심신(?)을 위로하며 놀았던 기억으로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는 방편들이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늘 변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의 상대시가부터 향가, 고려가요, 경기체가, 시조, 창, 민요, 판소리 등 오늘의 다양한 갈래의 음악까지 표현의 방식과 대중들의 즐김은 당시의 국가적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대체적으로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90년대 전후 우리의 경우는 이러한 현상이 급속도로 진행되었는데 이른바 X-세대의 등장과 함께 음악의 주 소비층이 아주 빠르게 젊은 층으로 확대 된다. 다시 말해서 비용을 치르고 음반을 대량 구입해 마니아 층을 이루고 콘서트 장을 찾아가 현장에서 음악을 소비하는 것이다.

91학번인 필자는 이 주된 소비의 한 층을 이루었던 세대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필자가 생각한 몇 가지 재미있는 근거가 있는데 첫째, 개인 피씨의 보급화와 피씨 통신의 활성화를 들 수 있다.

이는 소위 ‘삐삐’ 라는 요상한 물건의 등장과 더불어 사람들이 보다 쉽게 모일 수 있는 경로를 제공해 주었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지금의 인터넷을 이용해 소광장모임을 주도 하는 사람들이다.

그 전에는 라디오를 통해 듣고 싶은 음악들을 녹음하고 그 또래에서 그 문화를 주도하며 그들만의 정서를 공유했었지만, 이러한 매개물들이 대중화 되면서 한 집단이 대중들의 전체문화까지 주도해 나가는 현상에 까지 이르렀다. 물론 장단점이 있겠지만 전공이 아닌 필자가 여기서 그것을 논할 입장은 아닌 것 같다.

둘째로는 노래방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앞서 언급했듯이 80년 후반 고등학교를 다녔다. 이때 지금은 밴드라는 말로 더 익숙한 그룹사운드라는 음악 동아리를 했던 경험이 있다. 음악을 좋아했기에 친구들과 어울려 안동 낙동강변에서 기타 하나로 즉석 연주회를 펼치며 학업에 시달린 심신(?)을 위로하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노래방의 등장은 이러한 문화를 순식간에 없애 버리고 누구나 좋아하는 음악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해 노래하며 음악은 굳이 어려운 악기를 배워야 만이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확신을 가진다.

물론 출입에 나이 제한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이것이 잘 지켜지지 않았기에 나 같은 X-세대들에게 가능한 일이었다.

셋째, 서태지의 등장이다.
그 전까지는 4박자 리듬의 댄스음악과 조용필, 신승훈, 들국화, 신촌블루스 등 전통적지지 음악과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어느 프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이 전파를 타면서 일대 음악의 큰 물줄기를 바꾸었다고 할 정도로 돌풍을 일으켰다. 물론 이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던 기성세대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실제적인 구매력을 갖고 있지 않는 당시 부모 세대로써 현재까지 이르고 있는 한국의 대중음악을 주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약간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필자는 나이트클럽에 가는 걸 예나 지금이나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슷한 공간에서 같은 음악을, 같은 또래의 사람들이 같은 동작의 춤을 추며 음악의 다양성을 찾아보기 힘든 그 현상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세대를 이루었던 사람으로서 지금의 획일화 되어있는 음악 시장을 보며 추억의 한 컷 당시를 그려본다.

저 위의 사진은 필자가 94년 제대 후 학교 축제 때 노래를 부르던 사진이다. 불과 3년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그 날 가요제에 참가한 팀 중 기타를 가지고 노래했던 사람은 필자가 유일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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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독인 2009-07-07 00:06:06
본문 중, 굳이 "필자"라는 표현을 빼고 그냥 "나"라고 하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