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장주의를 보수적 가치라 하는가?
누가 시장주의를 보수적 가치라 하는가?
  • 김대호
  • 승인 2009.05.01 1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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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의 정치통계와 해설 (8)

한국의 300인 이상 제조업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은 중소기업보다 높다. 하지만 그 기복은 매우 심하다. 중소기업은 기복은 심하지 않지만 경향적으로 영업이익률이 떨어지고 있다. 1998년 6%에서 점차적으로 떨어져 2006년 현재 4.3%로 떨어졌다.

<표 1> 1991년 이후 제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영업 이익률 추이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2007년 10월)를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 분포를 보면 한국 대기업 중에서 순이자보상 비율이 100%가 안되는 업체가 1/5 가량 된다. 중소기업은 더 열악하여, 순이자 보상비율 100% 미만인 업체가 2004년 34.7%에서 점차적으로 늘어나 2007년 현재 43.9%에 달한다. 아예 영업 손실을 본 업체는 2004년 29.4%에서 2007년 현재 37.4%로 늘어났다. 이는 그만큼 불안한 기업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점을 바꿔서 내수/수출을 기준으로 한국 기업들의 경영지표를 보면, 수출 기업은 대기업, 중소기업 관계없이 영업이익률의 기복이 심한 편이고, 내수는 완만한 편이다. 한편 2001년 이후 내수 대기업의 평균적 영업이익률은 8~10%로 (내수/수출, 대기업/중소기업으로 나눈) 4개의 그룹 중에서 가장 높고, 내수 중소기업은 가장 낮다.


이로 미루어 내수 대기업의 높은 이익은 독과점이나 진입장벽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완전 경쟁 시장에 가까운 곳에서 기업활동을 하는 나머지 3개 그룹은 2006년 이후 영업이익율이 공히 4~6%로 근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불공정 거래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대체로 가장 치열한 경쟁 환경에 놓인 수출, 내수 중소기업은 2007년 이후 영업이익률이 4% 수준으로 근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영업이익률 측면에서 볼 때 한국 제조업 대기업은 그 부침이 심하다. 대기업의 주력일 수 밖에 없는 수출 대기업은 더 심하다. 단적으로 2004년 12%대에서 곧바로 6%대로 추락하였다. 또한 위험기업(영업 손실기업+이자보상비율 100% 미만 기업 등) 비중도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중소기업은 모든 면에서 대기업 보다 더 열악하다.


한국 제조업 중소기업의 열악한 사정은 기본적으로 낮은 생산성에서 온다. 다시말해 좋은 가격에 많이 팔지 못하여(가동률이 낮아) 종업원 1인당 부가가치가 낮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안고 있는 무수히 많은 문제 중 첫 번째는 한국 제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생산성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1991년 이후 최근까지 대략 대기업의 50% 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1991년 48.6%에서 경향적으로 하락하여 1995년~1998년 기간에는 38%~39%대를 기록하다가, 1999년 34.7%로 떨어진 후 2005년 현재 33.1%를 기록하고 있다. 이 역시 양극화 현상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축구 경기에 비유한다면 국가대표팀은 그런대로 선전하지만, 여기에 미래의 선수를 공급 할 유소년/청소년팀은 점점 피폐해져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의 생산성과 영업이익률을 포함한 경영 사정은 납품단가, 가동률, 매출액, 각종 비용(재료비, 인건비 등 변동비와 고정비)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 중소기업의 노동 비용(인건비)은 많이 떨어졌다. 제조업 중소기업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용은 1991~97년 기간에는 평균 18.7%였으나 1998~2005년 기간에는 평균 16.3%로 줄었다. 제조업 중소기업의 종업원 1인당 임금 수준도 1990년 대기업 임금수준의 66.1%에서 2005년 52.1% 수준으로 떨어졌다. 납품단가, 가동률, 매출액 등은 시장 상황, 기술력, 영업 및 마케팅 능력, 모기업과 하청기업간 관계, 고정비와 변동비 수준 등의 총화이다. 단적으로 가동율이 76.8%로 가장 높았던 2000년에는 생산성이 35.4%, 영업이익률은 5.8%였으나, 가동률이 68.2%로 떨어진 2004년과 2005년에는 생산성도 31.3%, 33.1%, 영업이익률은 공히 4.3%였다. 2006년 말 현재 한국 제조업 중소기업의 59.2%가 하도급 관계에 있고, 이 기업들의 모기업 납품액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83.1%에 이른다. 이를 감안하면 원청(모기업)과 하청기업의 관계나 납품단가야 말로 중소기업의 경영사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의 원청 기업과 (매출을 거의 1개 원청 기업에 의존하는 종속성이 강한) 하청 기업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게 하는 자료가 있다. 한겨레 신문은 2008년 5월 27일자에서 삼성전자의 3대 사업부문(반도체, 휴대전화, LCD)의 하나인 LCD부문과 여기에 부품을 공급하는 1, 2차 협력업체 가운데 매출액 상위 10개 상장기업(삼성 계열사, 외국계 기업 제외)의 실적을 비교 분석하였다. 삼성전자 LCD 부문 10대 부품업체들은 2006년의 3조316억원의 매출과 1091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둬, 3.6%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2007년에는 매출 2조9012억원, 영업이익 295억원을 거둬 영업이익률이 1.04%로 떨어졌고, 2008년 1/4분기에는 매출 7921억원(1년으로 환산하면 3조1684억원), 영업이익 119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이 1.5%에 머물렀다. 이는 최근 3년간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 5~6%를 훨씬 밑돈 수치다. 반면 원청인 삼성전자 LCD 부문은 2006년 매출 11조7천억원과 영업이익 6500억원을 거둬 5.56%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후, 2007년에는 매출이 크게 늘어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률이 10.1%로 뛰었고, 역시 비슷한 매출을 기록한 2008년 1/4분기에는 영업이익률이 23.27%로 뛰었다.


제조 중소기업의 업종별 영업 이익률 분포(2005년)도 한국의 원청과 하청간의 불건강한 관계를 보여준다.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을 상회하는 업종은 1차 금속, 화학, 비금속, 전자부품통신 등 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첨단 기술 업종이자, 1개의 원청 대기업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업종이다. 4사분명 업종(섬유, 목재,나무, 가죽가방 등)은 상대적으로 첨단 기술 업종도 아니면서, 중국 등 신흥 산업국과 경쟁이 치열한 편이다. 3사분면(자동차, 기타 운송장비)은 대체로 한창 성장하는 (부품)산업으로, 결코 저급 기술 업종이 아니다. 그렇다고 중국산 저가 부품과 가격 경쟁을 해야 하는 업종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률은 매우 낮다. 이는 원청대기업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한국이나 일본, 미국에서 압도적으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원청기업은 대체로 하청기업을 벼랑끝까지 몰아세운다. 마른 수건이라도 쥐어짜면 물이 나온다는 신념으로 거의 매년 가혹한 원가절감(부품단가 인하)을 실시한다. 하지만 그 강도나 하청기업의 법,제도,문화적 배려 수준은 차이가 있다. 미국은 본래 원청과 하청간에 동반자 정신을 별로 강조하지는 않지만, 기업간 불공정 거래에 대해서는 대단히 엄격한 제재를 한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원청의 횡포를 막아내는 각종 법, 제도, 문화가 잘 갖춰져 있다. 일본은 한국처럼 원청기업이 하청기업에 대해 원가절감(부품단가 인하)을 가혹하게 밀어붙이지만, 적어도 중소기업의 혁신성과까지 다 빨아가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어느 정도는 동반자 정신과 상생협력 정신을 견지한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세계 최강의 자동차 회사이자, 영업이익률도 자동차 회사 중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일본 도요타 자동차도 하청협력업체에 대해서는 매년 가혹한 원가절감=부품단가 인하를 실시한다. 하지만 일정한 기준과 원칙이 있어서, 이 기준을 협력업체가 자체 혁신 능력으로 앞서서 맞추면 그 만큼의 초과 이익(?)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협력업체의 혁신의 성과는 원청이 모조리 빨아가다시피한다. 당연히 협력업체는 이익을 많이 낼 수도, 적자를 낼 수도 없다. 그래서 매출이나 종업원 규모에 비해 이익률이 놀라울 정도로 낮다. 경영지표는 항시 위태로운 저공비행을 한다. 그러다가 삼성전자 LCD 부문처럼 원청이 이익률을 제고하겠다고 강력하게 밀어붙이면 저공비행하던 협력업체들은 곧바로 바다에 곤두박질치곤 한다. 위에 제시한 두 그림은 이것을 보여준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원청과 하청 간의 관계가 화전민의 행태를 연상케 할 정도로 약탈적으로 된 것은 기본적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장 탓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시말해 시장 원리(소비자 선택권과 자본 주도권)를 가로막는 보호 장벽이 지나치게 높거나, 소비자와 약자(하청 중소기업) 보호 장치가 너무 약하거나, 독과점 등 불공정 거래를 방지하는 장치가 너무 허술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시장과 사회가 너무나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노동시장 측면에서 보면 한국은 노동의 양, 질이나 성과, 직무에 상관없이 이익이 많이 나는 원청 대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의 처우는 매우 높고 고용은 경직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 처한 기업들은 유사시를 대비하여 여건이 허락할 때 이익을 최대한 많이 내야 한다. 적어도 고용.임금 유연성이 높은 기업보다는 더 많은 현금을 비축해 놓아야 한다. 한편 높고 안정적인 처우를 누리는 조직노동은 조직노동대로 유사시를 대비하여 비정규직이라는 고용안전판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안팎의 처우 격차가 너무나 커져버렸기에, 고용임금 조정은 끔찍한 악몽이며, 이는 사회안전망으로는 완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 공기업의 조직노동을 시장원리가 비껴간만큼, 나머지에게는 더 철저하고, 가혹한 시장원리가 적용될 수 밖에 없다. 이는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빛나는 성과이자 한계이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장은 노동시장 뿐만 아니다. 기업간 거래도 마찬가지다. 아니 모든 ‘갑’과 ‘을’ 관계와 모든 ‘기득권’과 ‘비기득권’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단적으로 한국은 (미국, 일본에 비해 시장도 적고, 경쟁자 숫자도 적기에) 하청 중소기업의 원청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는 높지만 원청의 횡포(불공정 하도급)를 막는 장치는 대단히 취약하다. 역사, 기후, 문화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한국의 경제사회 주체들에게는 그렇지 않아도 화전민적 충동이 들끓고 있는데, 허술한 불공정 거래 감시,감독 장치는 이 충동을 전혀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원청의 하청에 대한 부당한 원가, 기술 자료 요구, 기술 탈취, 부당한 비용 전가 등 횡포가 극심하다.

이의영 교수(군산대 경제통상학부)에 의하면, 미국의 경우 민간에 의한 (불공정거래 제소) 소송이 지난 115년간 미국의 전체 공정거래법 관련 소송의 88%를 차지한다. 2차대전 이후에는 90%이상이고, 2001년이후에는 95%에 이르고 있다. 한국은 민간에 의한 소송이 거의 없다. 단지 공정거래위원회의 심결절차에 의한 과징금이나 시정 권고가 불공정거래를 억누르는 주된 장치다. 미국은 불공정거래로 인한 손해액의 3배를 배상케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있다.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규정도 강력하여 1천만 달러 이하의 벌금형과 3년 이하의 금고형이 적용되고, 가중처벌을 통해 5억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기도 한다.('중소기업 상생모델과 구조적 혁신과제', <광장> 2008년 가을(창간호), 재단법인 광장)

삼성전자 임원이 가격 담합(불공정거래)으로 피소되어 거액의 벌금을 물고, 실형을 산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당연히 미국은 집단(단체)소송제가 있고, 이는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도 오래 전부터 도입되었다. 그런데 한국은 시장이나 민간 경제주체들에 의한 징벌 제도는 거의 무력하며, 재벌. 대기업에 휘둘리기 십상인 공정거래위원회에게 전속고발권이 주어져있다. 이는 관료의 권능 강화에는 도움이 되지만 재벌, 대기업에게는 결코 무서운 몽둥이는 아니다. 19세기 초, 중반 자본과 노동의 관계가 형식상 자유계약 원칙이었지만, 노동에 너무나 불리했기에 노동법이 생겨났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원청과 하청 관계는 19세기 자본과 노동의 관계와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공정거래법은 노동법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자 보호에 인색하다. 이는 정치인과 관료의 지나친 재벌, 대기업 편향성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 김대호 소장
제대로 작동하는 시장을 통한 자원 분배와 '(정치,경제,사회 주체들의)책임과 권능의 균형'을 추구하는 시장주의를 백안시 하려는 존재는 진보 깃발을 든 기득권 집단만이 아니다. 재벌,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친기업 정책은 재벌, 대기업, 토건족, 사학재단 등 기득권자들의 반시장주의적 지향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본능적으로 독과점을 추구하고, 진입장벽을 쌓고, (지금 은행이 모범(?)을 보여주고 있듯이) 권리이익의 사유화와 책임부담의 사회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행태를 옹호하는 '친기업' 정책과 공정 경쟁을 구현하여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소비자가 갖는 '친시장' 정책을 혼동하고 있다. 친시장 정책을 거부하는 세력은 보수와 진보를 초월한, 한국의 대부분의 기득권자들이다. 그렇기에 자유주의, 시장주의는 진보 개혁적 가치인 것이다. 진보, 개혁의 기준을 서유럽 좌파 정당의 1960~80년대의 가치, 정책이 아니라, 이 시대 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필부필남의 요구와 판단에 두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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