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공동체의 주인자격이 있는가
누가 공동체의 주인자격이 있는가
  • 김대호 소장
  • 승인 2009.07.1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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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김대호의 정치통계와 해설 (10)

정치통계 시리즈를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무엇으로 규정하든 역사와 공동체의 주도권을 쥐고자 하는 존재들은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공동체의 주인이 되려면 주인적인 사고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인적 사고와 능력의 뼈대는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현재와 미래의 자유와 행복에 대한 책임 의식이다. 이 뻔한 얘기를 수많은 통계를 들이밀면서 강조해 온 것은 진보든 보수든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의 처지(생활상)나 자유와 행복의 조건을 너무나 모르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거머쥔 자신이 누리는 권리, 이익이 얼마나 큰 지, 자신의 힘이 얼마나 큰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힘도 세고 공동체 전체와 미래에 대해 책임 질만한 어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약자의식과 유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한 한 진보와 보수는 다를 바 없다. 민주화 세대든 산업화 세대든 다를 바 없다. 현 세대 전체가 미래 세대에 대한 배려가 없고, 나라 전체가 힘과 위상에 비해 국제적인 책임과 배려가 없다.

주인적 사고 혹은 어른적 사고의 가늠자는 공동체 구성원의 다양한 처지와 조건에 대한 관심과 이해이다. 그 핵심은 개개인의 자유와 행복의 조건인, 현재와 미래의 일자리 사정과 일자리를 존재하게 하는 소비자(유권자, 납세자 포함)의 요구와 자산. 소득 분포이다. 이것을 살피면 자신의 위상도 알 수 있다. 또 하나는 공동체 전체의 자유와 행복의 조건으로, 시장, 에너지, 자원, 먹거리, 마실거리와 환경(생태) 사정이다. 북한. 통일 문제도 여기에 포함된다.

나는 역사의 주도권을 쥐고자 하는 존재들이라면 매사를 결정할 때 이 지점들을 빠르게 짚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시 이 지점들을 끊임없이 짚는 습성이 배여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잠깐 기존의 정치적 확신과 분노를 내려놓고 먼저 이 지점들을 개략적으로라도 살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와 공동체의 주인 자격시험이 있다면 출제 될 만한 문제와 답안을 살펴보자.

1) 한국에서 자유와 행복의 핵심 조건인, 일자리를 얻고 싶은데 얻지 못한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혹시 ‘실업자 80만 명, 실업률 4% 내외 청년 실업률은 그 따블로서 OECD 국가 중에서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답변할지 모르겠다. 이는 공무원 시험이나 시사 상식에서는 100점 받을 수 있지만, 주인 자격시험에서는 낙제다. 70점짜리 답안은 대략 300만 명이다. 근거는 OECD 주요국, 특히 한국과 문화(남편이 직장 나가서 일하고, 부인은 집에서 살림하는 식)와 제도(실업자에 대해서 사회 복지 혜택이 별로다)가 비슷한 일본의 고용률과 경제활동참가율이다.

[정치통계 2]에서 보듯이 OECD 기준(15~64세 인구 기준)으로 경제활동참가율을 따지면 한국은 2005년 현재 66.3%(2007년은 66.2%), 일본은 72.6%, 미국은 75.4%, 스웨덴은 78.7%이다. 문화와 제도가 너무나 다른 미국, 스웨덴과는 비교할 수 없고, 일본과 비교하면 대략 6.3%p가 낮다. 2007년 현재 한국의 15세 이상인구는 3,917만 명인데 이중 경제활동참가율 산출시 분모가 되는 15세~64세 인구 비중을 감안하면 이 차이는 대략 200만 명 수준이다. 2003년경부터 비경제활동 인구에 대한 상세 조사를 시작했는데, 2008년 11월 16일자로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준비자(취업을 위한 학원·기관통학+취업준비)는 58만6천명, 유휴(그냥 쉬었음)는 126만 6천명이다.

구직 단념자는 12만4천명이다. 그나마 한국은 대학진학률이 세계 최고 수준일 정도로 청년층 취학률이 높고, 병역 의무까지 있어서 취업준비자나 유휴자 숫자를 줄여주었기에 저 정도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일자리 부족 현상은 2006년 8월 현재 평소 취업자(2,284만 명, 6개월 이상 취업자)와 취업경험자(2,584만 명, 6개월 미만 취업경험자 포함)의 격차 300만 명으로 부터도 엿볼 수 있다. 평소 취업자를 대상으로 한 월평균 소득조사에서 100만원 미만이 33.9%, 100~200만원 미만이 37.1% 였다. 이 통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열악하여 충격을 주곤 하는데, 2008년 6월 타결된 2009년 적용 최저임금 수혜자가 208만 5천명(전체 근로자의 13.1%)임을 감안하면 그리 놀라운 수치는 아니다. (2009년부터 적용될 최저임금은 전년에 비해 6.1%가 인상되어 주 44시간 근무 기준 90만4천원, 40시간 근무 기준 83만6천원이다)

참고로 통계청 통계에 의하면 2007년 현재 실업자는 73만6천명, 실업률은 3.1%, 청년(15~29세) 실업자는 32만4천명, 청년 실업률은 7.9%이다. 실업자의 정의는 3만3천 가구를 대상으로 한 표본 조사에서 조사 대상 주간(15일이 낀 주)에 수입 있는 일을 하지 않았고, 지난 4주간 일자리를 찾아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였던 사람으로서 일자리가 주어지면 즉시 취업이 가능한 사람이다. 통계청 홈피에 올라와 있는 2007년 현재 실업률(15~64세 기준)과 청년실업률(15~24세 기준) 국제비교 표는 다음과 같다.

<표 1>주요국 실업률, 청년실업률 비교(2007년 현재)

취업자의 정의는 이렇다.
가. 조사대상주간에 수입을 목적으로 1시간 이상 일한자
나. 동일가구내 가구원이 운영하는 농장이나 사업체의 수입을 위해 주당 18시간이상 일한 무급가족종사자
다. 직업 또는 사업체를 가지고 있으나 일시적인 병 또는 사고, 연가, 교육, 노사분규 등의 사유로 일하지 못한 일시 휴직자


여기까지는 70점짜리 답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80점 내지 90점짜리 답안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유럽 같으면 실업자로 등록했을, 수백만 명의 비임금근로자(자영업자와 무급가족 종사자)와 비정규직을 얘기해야 한다. 특히 통계청의 가구 조사에서는 임금근로자로 잡히지만, 노동부의 사업체 노동실태 조사에서는 잡히지 않는, 사업체 바깥에 존재하며 일용공이나 家內 하청 형태로 일하는 사람들을 얘기해야 한다. 이들은 대체로 사업체 내에서 일하는 사람들 보다 근로조건이 더 열악할 수밖에 없다.

2) 비임금근로자의 비중과 처지를 아는가?

[정치통계 3]에서 보듯이 선진자본주의 국가와 비교할 때 한국 일자리 구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선진국에 비해 대략 6~12%p 쯤 낮은 경제활동참가율과 20~25%p 쯤 낮은 임금근로자 비중이다. 이는 한국의 비임금근로자(자영업자+무급가족 종사자) 비율이 그 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7년 현재 한국의 총취업자(2,343만3천명) 중에서 임금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68.2%, 비임금근로자(고용주+자영업자+무급가족종사자)가 31.8%이다. 비임금 근로자 중 고용주는 6.7%, 자영업자는 19.1%, 무급가족종사자는 6% 수준이다. 이는 유럽 선진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치이다.

<표 2> 종사상 지위별 취업자 숫자(단위 천명)및 비중


평균적으로 임금근로자의 절반 정도 밖에 안 되는 자영업자의 소득을 감안하면, 자영업자와 무급가족 종사자(도합 590만 명, 2007년 현재)의 상당수는 사실상 실업자나 진배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업자 등록 시 아무런 혜택이 없기에 그냥 비임금근로자로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 인원은 최소 200~300만 명은 될 것이다. 이를 합치면 실업자는 500~600만 명으로 늘어난다.

한편 이들 비임금근로자들은 본래 과잉인데다가 내수 중심에 지역 상권을 근거로 했기에 세계화(해외소비 활성화), 교통수단의 발달(소비의 광역화, 서울 집중화), 지식정보화(전자상거래 활성화), 유통 현대화(대형 할인점 증가)의 직격탄을 맞았고, 신용카드 결제 비중의 확대에 따라 그 동안 내지 않던 부가세를 꼼짝없이 징수 당했다. 게다가 이들은 기초생활보호대상자가 될 수도 없고, 고용, 산재보험 대상도 아니며, 의료보험이나 국민연금도 소득에 비해 많이 내야한다. 공무원이나 대기업 근로자들처럼 고용과 소득을 지켜주는 튼튼한 울타리도 없다.

그 어느 계층보다도 노동시간이 긴 존재들이기에,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별것도 아닌 노동을 제공하고도 엄청나게 많이 누리는 존재들에 대한 불만과 이를 방치하는 정치(정부)에 대해 불만이 하늘을 찌르는 것은 당연지사. 이런 저런 이유로 공무원과 공공부문을 믿고(그래서 민영화 등 공공부문에 대한 하드웨어적 개혁을 중단하고), 조직노동과 협력적 관계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조세 징수나 재정운용의 원칙을 견지하고, 호남과 지지 계층에 대해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짓을 삼간 참여정부가 외면 받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참여정부를 외면한 민심이 아프리카 군벌식 도적정치(일명 먹튀정치)와 학습능력을 상실한 노인 정치를 실천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로 쏠릴 리가 없다.

3) 대기업, 공기업, 제조업, 조직노동의 비중, 처지, 위상을 아는가?

통계청 가구 조사에서는 임금근로자는 2007년 현재 1,597만 명이지만, 노동부의 노동행정 대상인 사업체 노동실태 조사에서는 1,187만 명(140만개 사업체)만 잡힌다. 당연히 자영업자와 무급가족 종사자만 일하는 사업체는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였지만, 임금근로자가 1명이라도 있고 무급가족 종사자가 있는 사업체는 이 통계로 잡았다. 이 인원은 88만7천명이다. 사업체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체 실태 조사에서 제외된 사람들은 56만 3천명의 공무원들 -공공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행정 부문에 종사하거나 공무원이 제직하는 사업체 종사자-과 3만3천명의 농. 어업 근로자이다. 이를 합치면 1,246만6천명이다. 이들이 한국에서 그런대로 간판이라도 번듯이 달고 있는 사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표 3> 노동부 전국 사업체수 및 종사자 수(2006년) -노동부 사업체 실태조사-

그러면 사업체 바깥에서 일하는 임금 근로자는 얼마나 될까? 노동부 사업체 실태조사에서 집계한 무급가족종사자 88만7천명은 통계청 가구 조사에서는 임금근로자(1,597만 명)로 잡지 않았다. 따라서 임금근로자 이면서도 사업체 바깥에서 일용직, 가내 하청 등의 형태로 일하는 사람들이 대략 433만7천명 쯤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거의가 임시, 일용 노동자들이다. 사업체 실태 조사에서 집계한 상용근로자는 844만 명으로 가구 조사(862만 명)와 근접하지만, 사업체 노동실태 조사에서 집계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임시 및 일용근로자는 158만 명으로, 가구 조사에서 집계한 735만 명과 큰 차이가 있다.

어쨌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시킨다면 가장 큰 혜택을 볼 수 있는 300인 이상 대기업의 임시및 일용근로자는 총 19만5천명으로 전체 158만 명의 12.4%에 불과하다. 반면에 1~29인 업체의 경우 임시및 일용근로자는 95만 5천명으로 전체(158만 명)의 61%이다. 이들 소기업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근로조건 격차가 크지 않기에 비정규직 문제가 그리 심각할 수가 없다. 단적으로 43만9천명을 표본으로 한 노동부 ‘사업체 근로실태 조사’(2008.5.27)에 따르면 같은 사업장의 나이, 학력, 근속년수 등이 같은 조건인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비교할 때, 300인 이상 대기업 정규직은 (비정규직에 비해) 시간당 임금총액 31.8% 높지만, 300인 미만은 12.2%가 높았고, 노조가 있는 기업은 32.6%, 무노조 기업은 9.5%가 높았다. 규모가 큰 곳은 대개 노조가 있기에 규모 효과와 노조 효과가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노동부 사업체 노동실태 조사에 따르면 보통 사람들이 제대로 된 직장으로 여기는 300인 이상 대기업 종사자는 총 162만 명이고, 100인 이상은 300만 명이다. 분류 기준을 달리하여, 공공부문만 따로조사하면,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교육부문 및 공기업 산하기관(이 둘은 사업체 노동실태 조사에서 잡힘) 합쳐서 총 124만 명의 정규직과 31만 명의 비정규직이 일하고 있다.

<표 4> 공공부문 종사자 현황(2006년)

비정규직을 무조건 정규직화 한다면 로또 당첨에 버금가는 큰 행운을 거머쥐는 사람들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일 것이다. 참여정부 기간에도 이런 행운을 나눠준 기관장이 좀 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인정이 많고, 청렴하며 법에 어긋난 행위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노동시장 상황과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었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참여정부 주류 자체가 잘못 읽었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은 많은 유럽국가들이 그렇게 하듯이 비정규직으로도 살 수 있는 세상, 다시말해 노동의 양과 질이 같다면 정규직 비정규직 차별이 별로 없는 세상을 만드는 쪽으로 가야 한다. 물론 이는 상향 평준화를 말하는 것도 하향 평준화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생산력 수준에 맞게 평준화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정치적 역관계와 국민 정서상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간극을 크게 유지해야 한다면 최소한 축구 1부 리그와 2부 리그의 팀 교체처럼 실력에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참여정부와 진보 세력의 주류는 이런 개념 없이, 부당한 차별과 배제를 그대로 두고서, 다시말해 정규직이 안되면 살기 힘든 세상을 그대로 두고서(귀족적 지위에 있는 정규직을 그대로 두고서), 기다림과 투쟁을 통해서 자본력이 강한 곳에서 조금씩 비정규직을 정규직이나 중규직으로 전환하는 미봉적, 보수적 해결책을 기조로 잡았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고용의 절대량 감축이나 고용의 외부화(외주, 하청화)가 훨씬 많이 일어났다. 그러므로서 너무나 심각한 실업, 반실업, 청년실업 문제를 악화시키면 악화시켰지 개선하지는 못하였다.

한편 노동부 조사와는 관점이 다른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경우 비정규직이 훨씬 많은 것으로 나온다. 2006년 8월 현재 1~4인 기업(사업체가 아니라 기업이다)은 87%(정부 통계로는 50.4%)가 비정규직이며, 5~9인 기업은 70%(정부 통계로는 40.5%), 10~29인 기업은 56%이다. 전체적으로 전체 비정규직의 75%는 30인 미만 기업에 있다. 반면에 300인 이상 기업의 경우 비정규직은 불과 20% (정부 통계로는 19.7%)이다.

<표 5> 기업 규모별 비정규직 분포(2006년 8월 현재) (단위: 천명)

일반적으로 종업원의 창의와 열정이 귀하다는 것은 소기업 일수록 더 실감한다. 소기업은 중시할 주주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이 넘쳐난다. 이는 비정규직이 자본가의 승자독식주의와 과도한 탐욕(이윤), 주주중시 경영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안정된 고용을 보장할 수 없는 열악한 자본의 능력과 정규직의 고용-임금의 경직성 및 연공서열 체계와 인력의 외부화가 손쉬운 지식정보화 환경 등에서 온다고 보아야 한다.

4) 한국 진보의 지적 분단선은?

위에서 길게 이야기 한 것은 한국 진보의 지적 분단선의 하나(횡적 분단선)이다. 즉 한국 진보는 불안할 고용조차도 없는 수백만(실업자, 반실업자), 비정규직이라도 사업장 내에서 일해 보았으면 하는 수백만 - 이들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 사업장 내 근로자가 될 가능성이 더 멀어진다-, 열악한 자본의 조건으로 인해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별 차이가 없는 중소기업 (사업체 내) 근로자들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지적 분단선(종적 분단선)도 있다. 어쩌면 진보의 지적 수준을 떨어뜨리는 가장 결정적인 지적 분단선은 노동을 태운 '말'이나 '수레' 격인 자본과 기업에 대한 몰이해 인지도 모른다. 정말 한국 진보 좌파는 노동의 이해와 요구를 전투적으로 주장 하지만, 그를 고용할 자본(혹은 기업)과 물질적 문화적 생산력의 담지자인 지식근로자의 이해와 요구를 너무나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진보 좌파는 가계나 부모의 사정을 분간 못하고 그저 더 내놓으라고 칭얼대는 유아와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다.

[정치통계 8]에서 보듯이 한국 기업의 경영 상황은 천차만별이다.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한전, KTX, 한국통신 같은 안정된 기업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 대기업 중에서 순이자보상 비율이 100%가 안 되는 업체가 1/5 가량 된다. 중소기업은 더 열악하여, 순이자 보상비율 100% 미만인 업체가 2004년 34.7%에서 점차적으로 늘어나 2007년 현재 43.9%에 달한다. 아예 영업 손실을 본 업체는 2004년 29.4%에서 2007년 현재 37.4%로 늘어났다. 이는 그만큼 불안한 기업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생산성 격차도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가 생각하는 노동정책은 대개 상향평준화를 의미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나, 최저임금 상향, 비정규직 사유제한, 청년이나 장애인 고용 의무화, 고용임금 유연성 제한(엄격한 해고 사유 제한) 등 강력한 가이드라인(하한선)을 설정하는 것이다. 본래 가이드 라인의 의미는 그것을 보장할 수 없으면 사업을 접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진보의 노동 정책 대안은 (물론 사회안전망 확충관련 대안은 아니지만) 많아도 300만을 넘을 수 없는 기득권 노동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할 뿐이다. 거대한 규모의 실업자, 반실업자, 청년실업자, 팍팍한 중소기업 자본에 속하는 대다수 노동의 이해와 요구는 외면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림 1] 한국 진보의 지적 분단선

분명한 것은 자본이나 기업이 가져가는 몫(영업 잉여)이 특별히 크다면 세금정책이나 노동운동의 활성화를 통해서 분배 구조를 개선 할 수가 있고,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피용자 보수와 영업잉여 관련 통계는, 선진국에 비해 훨씬 낮은 임금근로자 비중을 감안할 때, 근로자(피용자) 1인이 가져가는 몫은 2004년 현재 671로서 같은 시기 미국(62.5), 일본(60.1), 독일(59.2)보다 더 컸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 대비 제조업 근로자 평균 임금수준(달러 기준)도 이 통계를 뒷받침한다. 2004년 현재 한국 제조업 평균임금은 1인당 국민총소득의 1.65배이지만, 일본은 1.24배, 타이완은 1.05배, 미국은 0.88배이다. 한국 특유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감안하면 한국 제조업 정규직의 임금 수준은 이 통계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고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노동운동이 활발한 한국 제조업 생산직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상당부분 제조업의 생산성 향상의 산물이긴 하지만) 급속히 상승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1991년 한국의 제조업 생산직 근로자의 시간당 평균임금은 4.61달러, 타이완 4.34달러, 싱가포르 4.25달러 일본 14.51달러였다. 2005년에는 한국은 13.56달러, 타이완은 6.38달러, 싱가포르 7.66달러, 일본은 21.76달러였다. 그런데 2005년 현재 1인당 GDP는 한국이 16,306달러, 타이완이 15,482달러, 싱가포르 29,917달러, 일본 35,592달러를 감안하면 한국이 얼마나 높은 지 알 수 있다.

<표 6> 생산직 근로자의 시간당 보수비용 국제비교: 제조업(미국 달러 기준)

출처: 한국노동연구원(http://www.kli.re.kr/) 해외노동통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조합원 총수는 151만 명, 이중 5,000인 이상 규모 노조의 조합원이 65만, 1000~4999인 규모가 29만 명으로 이 둘을 합치면 총 94만 명으로 전체 조합원의 63%를 차지한다. 이로부터 한국 노동조합 운동의 조직투쟁력과 과제의 우선순위 선정 능력(이데올로기)에서 이들의 위상을 유추할 수 있다.

불안할 고용조차도 없는 수백만(실업자, 반실업자), 비정규직이라도 사업장 내에서 일해 보았으면 하는 수백만,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별 차이가 없는 중소기업 (사업체 내) 근로자들에게는 비정규직 문제나 고용불안 문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고용 창출의 문제와 노동 간 공정한 경쟁의 문제가 훨씬 절실하다. 선진국의 프로축구에서 매년 2부 리그 상위팀과 1부 리그 하위 팀이 자리바꿈하듯이 노력과 능력에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체계와 공평한 상벌 체계가 훨씬 중요하다. 경제를 활력 있게 만들고, 고용을 더 많이 창출하고, 사회를 역동적으로 만드는 이런 담론이 짓눌리는 것은 이미 거대한 기득권을 거머쥔 조직노동의 이데올로기적 영향력과 매사를 신자유주의에 돌리는 시대착오적인 담론의 영향력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긴 얘기 짧게 줄이면 한국 사회 주인 자격은 공동체 전체와 미래세대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바탕으로 '고용률의 대폭적 상향'과 '공정한 경쟁과 공평한 상벌'을 최우선 국가 과제로 올려놓아야 획득된다. 이는 부동산 불로소득, 독과점, 원청과 하청의 불공정거래, 재벌기업의 내부자 거래, 선거제도, 자격증 제도, 공무원 임용제도, 사법제도, 유효성이 다한 공공부문 등 정치, 경제, 사회 다방면에 걸친 제도적, 문화적 경쟁제한 장벽(진입장벽이자, 소비자 선택권 제약 장치다)의 해체 또는 합리적 재조정을 의미한다.

▲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또한 토건족 및 지방 토호들이 주도하는 거대한 재정 약탈 방지를 의미한다. 이런 대역사들이 성공하면 벤처중소기업의 창업도 활성화 되고, 중소기업의 성장도 쉬워지고, 공공부문 확대 부담도 적어져서 고용량도 늘어난다. 또한 교육비, 주거비, 식료품비 등 생활비도 떨어지고, 사회복지 재정에 상당한 여유가 생기면서 같은 수입으로도 개인과 기업이 훨씬 여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다.

한국 진보 좌파가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없는 것은 복지재정 확충, 사회안전망 강화, 시장 폭력 완충, 개인에 대한 책임성 증대를 외칠 뿐 경제를 살리고, 고용률을 올리고, 복지재정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거의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보 기득권층의 이해와 요구를 철저히 대변하여 '공정한 경쟁과 공평한 상벌' 정책 대부분을 신자유주의라고 적대시 하기 때문이다. 한국 보수 우파가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없는 것은 이들 대부분은 일신의 영달을 위해 살아왔을 뿐, 공동체 전체와 미래세대가 안중에 없기 때문이다. 반공주의 하나는 투철하지만 자유주의도 민주주의도 모르고, 정권 잡았을 때 나도 한 몫(자리, 이권, 재정 등) 챙겨 튀자는 도적정치(먹튀정치)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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