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말고 살아내자고 말할 용기
죽지 말고 살아내자고 말할 용기
  • 정순임
  • 승인 2013.04.12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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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창>정순임 한문고전 번역가

“제 머리가 심장을 갉아 먹는데 이젠 더 이상 못 버티겠어요. 제가 엄마 아빠를 사랑하지 않았나 봐요. 안녕히 계세요. 죄송합니다.” 3월 2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모 아파트에서 열여섯 살짜리 아이가 바닥으로 떨어져 숨지기 전에 엄마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의 내용이다. 이 뉴스를 접하는 순간 정말 내 머리가 심장을 갉아 먹는 것 같았다. 같이 뉴스 이야기를 하던 큰아이가 “엄마, 저 아인 정말로 자기 문제가 뭔지 알아서 살 수가 없었던 거 같아. 그러니까 저런 글을 남겼지.”한다.

너무 많은 아이들이 스스로 죽어간다. 지난 10년간 청소년 자살률은 2배 이상 증가했다고 하고, 실상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도 간간이 아이들이 죽었단 이야기가 들리곤 한다. 왜 아이들은 그 짧은 삶을 사는 동안 꽃이 아름답다는 기쁨보다 죽을 수밖에 없는 고통을 먼저 배운 것일까? 이런 사건이 터지면 우선 지적되는 것이 공부만을 강요하고 공부만 잘하면 뭐든지 괜찮다는 부모들의 교육관과 사회적 분위기이다. 정확한 통계자료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자살을 선택한 아이들의 기사를 살펴보면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인 경우가 많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하는 사회에서 공부를 잘하는데 죽음을 선택한 아이들이 많다는 건 참으로 이율배반적이다.

잘한다는 것은 절대적이기도 하고 상대적이기도 한 개념이다. 저마다 가진 재능 속에서 최선을 다한 것을 잘한다고 하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고 어느 면에서든 일등이 되어야 잘한다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최선을 다해 잘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는지도 모른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어쩌면 모든 자연이 그러할 것이다. 최선을 다해 잘해서 꽃을 피워야 하고 열매를 맺어야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수 있는 것이니, 어쩌면 최선을 다해 잘한다는 건 자연의 조건 중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잘해야 한다는 의식이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다니는 학교에서 일등을 하면 전국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것보다 더 나아가면 세계화의 물결에 발맞추어 세계에서 최고가 되어야 만 잘하는 것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유명하다는 특목고에 아이를 보낸 친구가 입학식에 갔다 와서 “선생님들이 그러는데 첫 중간고사 치고 나면 구석구석 숨어서 아이들이 우느라 난리라고 그 때 잘 다독여 주어야 한다더라.” 하는 말을 했던 적이 있다.

각기 자기가 다니던 학교에서 제일 잘나가던 아이들을 한 곳에 모아 놓았는데, 거기서도 어김없이 상대적 평가는 적용된다. 누구는 일등을 하고 누구는 꼴등을 할 수 밖에 없다. 그 학교에서는 꼴등을 해도 연ㆍ고대는 무난히 간다고 하는데 부모와 아이들은 그 경쟁을 뚫고 들어가서도 상대적 평가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다. ‘부모가 그따위 교육관을 가지고 있으니 아이들이 죽음으로 내몰리지.’ 우리가 가장 도달하기 쉬운 결론이다. 그러나 그 부모도 하늘에서 살다 뚝 떨어진 사람들이 아니다. 경쟁에 내몰리며 피곤한 삶을 살아보니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발붙이고 사람행세라도 하고 살려면 이기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 것이다.

청소년의 자살률은 세계에서 중간 정도에 속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자살률은 OECD국가 중 단연 일등이라고 한다. 어른들이 훨씬 많이 스스로 삶을 끊어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경쟁에 내몰려 행복하지 않은 청소년들이 자라 더 심각한 경쟁으로 내몰리고 벼랑 끝에 서게 되는 사회 구조로 봤을 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사실 그들에게 아니 어쩌면 나 자신에게 조차도 죽지 말고 살아내자고 말할 용기가 없다. 그런데도 이 글을 쓰고 있다. 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이다.

자기 의지대로 태어난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상관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세상 어떤 사람도 자신의 의지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자기 목숨을 맘대로 재단해서는 안된다. 죽는 것보다 훨씬 끔찍하고 힘든 세상이라 하더라도 자살은 절대로 선택해서는 안되는 사안이다. 그렇다면 살아내야 한다. 아이들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찾고 행복을 만들어가라고 그건 너희들의 의지에 달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어른인 나는 어른인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아이들을 키워내고, 이 아름답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 삶의 고단함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우리가 경쟁을 거부하고 저마다 가진 재능 속에서 최선을 다하면 행복한 그런 세상을 만들어 내 보자고....... 그것만이 우리와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겠냐고........

지난 주말 영덕으로 가는 길은 봄비가 과하게 내리고 바람이 심술을 부리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꽃들은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목련이 먼저 피었으니 일등이라고 뽐내지도 않았고, 아직 꽃을 피워내지 않은 복숭아나무들도 안달하지 않았다. 듬성듬성 꽃 싹을 밀어낸 어린 나무들도 무성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지 않았다. 우리 이 꽃들을 보며 죽지 말고 살아내자고, 아주 잘 살아내 보자고, 그래서 우리 모두를 지켜내자고 용기를 내서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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